김치는
종합영양선물세트
후텁지근한 여름기가 감돌던 팔월 말경에 텃밭에다 무와 배추를 심었더니
그것들이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 김장감이 되더라. 참 장하다! 어느새 배추엔 샛노란 속고갱이가 그득 차고
미끈한 통무가 되었으니! 잎에다 배추나비와 나방이들이 하도 알을 슬어대 애벌레 녀석들 잡느라 곱사등에 뼈마디가
새큰새큰거렸다.
새끼들! 농약을 확 뿌려버리고 싶었지만
. 우리가 먹는 곡식과 채소, 과일엔 농부의 피와 땀,
뼈아픔이 배어있음을 잊지말 것. 스님들은 한 톨의 알곡을 사리골(舍利骨)로 여긴다고 한다. 자고(自古)로 음식의
고마움을 모르면 천벌을 받는다.
김치는 다름아닌 발효식품이요, 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 젓갈류
등 우리만큼 발효문화가 발달한 나라는 없다. 김칫거리는 배추나 무가 주지만 열무 부추 양배추 갓 파 고들빼기 씀바귀
등 일흔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어디 김치(沈菜·딤채)를 냄새로만 담그는가? 무를 숭덩숭덩 잘라 채를 치고, 마늘
생강 고춧가루 소금 간장 식초 설탕 조미료 등 갖은 양념은 기본이고, 멸치젓 어리굴젓 새우젓에다 호두 은행 잣 등의
과일류는 물론이요, 북어 대구 생태 가자미까지 넣는다.
김치를 마냥 저린 푸성귀 정도로 여기지 말지어다. 여러
비타민에다 고른 영양소, 유산균까지 그득 들어있는 종합영양식품이다. 게다가 사스(SARS), 조류 바이러스까지
잡는지라 세상사람들이 홀딱 반해 난리들을 피운다.
이제 김치를 담근다. 배추를 소금으로 적당히 절여 숨을 죽이고,
앞의 여러 거리를 매매 버무려 배춧잎 한 장 한 장 들춰가면서 사이사이에 척척 집어넣어 예쁘게 오므린 다음 독에다
차곡차곡 눌러 담는다. 대부분의 세균은 소금에 절일 때 죽어버리고 염분에 견디는(내염성) 유산균이 남아서 김치를
익힌다. 두말할 필요 없이 채소에 묻어있던 미생물들이 발효의 주인공이다. 김치를 김칫독에 넣고 김칫돌로 꼭꼭 눌러
공기를 빼낸다. 김치에 사는 유산균은 산소가 있으면 되레 죽어버리는 혐기성 세균(嫌氣性細菌)이다. 즉 염분에
견디면서 산소를 싫어하고 낮은 온도를 좋아하는 유산균(乳酸菌·젖산균·lactic acid bacteria)이
살아남는다.
독 안의 유산균이 천천히 수를 늘려가니 이를 발효(醱酵)라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균이 김치를 먹이로 써서 번식하며 유기산을 내놓으니, 군침을 돌게 하는 김치의 특유한 그
맛이다! 이 때만 해도 다른 미생물들은 유산균에 눌려 꼼짝 못한다. 그러나 오래 끌다보면 시어지고 어느 순간
유산균이 맥을 못추는 때가 온다. 유산균은 온도에 민감하다. 그래서 온도를 낮게 하여 유산균이 죽는 것을 막아주는
기구를 개발하였으니, 세상에 없는 한국고유종인 김치 냉장고다. 김칫독을 묻었을 때 겨우내 땅 속의 온도는
거의 변하지 않고, 영하 1℃ 근방을 유지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흉내를 낸 것이다. 여느 발명품 치고 자연의 모방이
아닌 것이 없다!
김치의 산도가 떨어지면서 세균이나 곰팡이(효모)들이 득세하고,
김치를 더더욱 시게 하니(산패·酸敗) 드디어 군내가 난다. 그러나 구진(久陳)한 묵은 지(漬·김치)에도 침이 동하고
나름대로 특유의 맛이 있다! 세포 속의 김치 유전자(DNA)가 발효(發效)한 탓이다. 암튼 이렇게 김치 하나에도
과학이 농익고 있다.